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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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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멤버십 캠페인 (3): 언약교회란 무엇인가?2020-09-09 22:45
작성자 Level 10

언약교회란 무엇인가?

마 28:18-20 (2020년 8월 19일 수요예배/성경공부)

(유튜브 방송 청취)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언약교회의 43년 역사와 새로운 미래

 

구(舊) 포모나밸리 한인연합감리교회(현(現) 언약교회)를 개척하신 분들은 김웅민 목사와 이요한 목사 두 분이십니다(개척 당시 둘 다 전도사였음). 1978년 6월 25일 라번연합감리교회(La Verne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포모나밸리 한인연합감리교회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창립예배 때 김웅민 목사의 설교제목은 “예수는 내게 누구신가?”(막 5:24-34)였고, 우리 각자가 예수님과 맺는 관계를 기초로 교회가 세워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개척 당시 추구한 이상은 직제와 계급이 있는 기성교회를 지양하고, 평신도와 교역자가 서로 협력하며 세워가는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본 교회가 세워질 때 추구했던 이상, 곧 교회 선교사명인 셈입니다.

 

이듬해 1월 김웅민 목사께서는 LA 로벗슨 한인연합감리교회(지금의 LA 한인연합감리교회) 부목사로 청빙을 받아 교회를 떠나면서 이요한 목사께서 단독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1979년 10월 7일 주일부터 온타리오 제일연합감리교회(262 N. Euclid Ave., Upland)에서도 예배를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 16일부터 라번연합감리교회에서 교회를 모두 이전했습니다.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은 창립 2년만에, 즉 1980년 6월에 “포모나벨리 한인연합감리교회(Pomona Valley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는 연회에 정식 가입하여 미 연합감리교회 회원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6월 27일 주일부터 교회를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채플로 이전해 예배하길 시작했고, 주일학교는 학교교실을 사용했습니다.

 

미주 내 다른 한인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언약교회 역시 절반 이상이 믿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낯선 미주 땅에서 한인 공동체를 절실히 목말라 하던 이들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보다도 공동체가 필요했습니다.

 

Ph.D. 과정을 마치는 일에 전념하고자 이요한 목사께서 1982년 12월 31일 자로 교회를 사임했고, 후임으로 백승배 목사께서 3대 목사로 1983년 1월 1일 부임했습니다.

 

교인들의 신앙훈련을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신학교 안에 있는 아시안-아메리칸 사역센터(Center for Asian-American Ministries) 사무실에서 새벽기도회를 가졌고, 1983년 2월부터 매주 저녁 7시 30분에 각 가정을 돌아가며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속회모임도 4월부터 시작했습니다.

 

본 교회는 유명한 학부 대학 5개와 일반 대학원 하나, 또한 신학대학원이 있는 클레어몬트에 위치하고 있기에 자연적으로 이곳에 유학오는 학생들을 상대로 전도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온 대학원생들이 그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많지 않아 교회재정이 그리 넉넉하진 못했으나, 이때부터 자체건물을 소유할 목적으로 건축헌금을 시작했고, 생일감사헌금과 기타 특별헌금은 모두 건축기금으로 저축했습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보아 1985년에 이미 5만 불을 저축했고, 1994년 현재 교회(Covenant UMC)로 이전해 건물을 개축할 때 유용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4년 2월 5일 임시총회에서 언약교회(Covenant United Methodist Church)로 이전을 결의하고, 22일에 이사했는데, 이 교회가 현재 우리 교회가 위치한 곳입니다.

 

1988년 6월 31일 자로 백승배 목사께서 태평양연합감리교회로 파송 받아 떠나고, 조완걸 목사께서 1988년 7월 1일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본 교회는 쓰라린 경험을 하는데, 미국교회(Covenant UMC) 회중과의 갈등입니다. 그 갈등은 CUMC로 옮겨온 후 계속 심화되어 1988년 9월 마지막 주일을 끝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 후 3년 6개월 만에 포모나밸리 한인연합감리교회는 신학교 옆 클레어몬트 연합감리교회(Claremont United Methodist Church)로 1988년 10월 2일에 옮겼습니다. 이때 교인들은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다시 한 번 갚게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문화적 생활습관 차이와 CUMC 교인들의 전반적인 한국문화의 이해부족과 텃세로 볼 수 있고, 그 밑엔 인종차별이 깔려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반 이민정서도 한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1983년에서 1990년까지는 이민 온 포모나밸리 한인들이 이 땅에 정착하여 믿음의 장을 열어 굳건히 세워가며, 교회가 부흥한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1990년 조완걸 목사는 만 2년간의 목회를 마치고 1990년 6월 30일에 교회를 사임했고, 7월 1일 부로 이은철 목사께서 포모나밸리 한인연합감리교회로 파송 받아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1990년부터 2004년엔 교회가 성장을 향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7월 1일 쫓겨난 지 약 5년 8개월 만에 현재 교회 위치인 언약교회로 다시 돌아와 건물을 공동소유하고 정착했습니다. 언약교회 백인회중이 마음을 열고 다시 한인회중을 받아들일 때, 한 가지 조건은 자신들은 재정능력이 없어 담임목사를 모실 수 없으니, 그 문제를 한인회중이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교수이신 김찬희 목사께서 영어회중을 위한 비전임 목사가 되어 학교에서 은퇴하실 때까지 만 5년 동안 그들을 섬겼습니다.

 

1994년 7월 1일에 포모나밸리 한인연합감리교회는 언약연합감리교회(Covenant United Methodist Church)와 합병했습니다. 친교실이 좁아 그 동안 저축한 25만불로 개축을 시작하여 1996년 5월 19일에 봉헌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수리하는 한인회중을 보고서 백인회중이 저축한 20만불을 선뜻 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포모나밸리 한인연합감리교회는 한어로 “언약교회,” 영어로는 “Covenant United Methodist Church”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90년대 초부터 언약교회는 교단분담금을 100% 지불해왔습니다. 교인들은 헌금생활에 충실했고, 선교활동을 위해 아낌없이 재물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교인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사역에 헌신하는지 보여줍니다. 사실 연회분담금 납부는 연합감리교회의 한 개체교회로써 감당할 최소한의 선교입니다. 교단의 연대성 속에서 함께 선교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1996년에 처음으로 영어 동시통역 예배가 실시되었습니다. “제5기 전도 폭발”과 “한 영혼 전도하기” 캠페인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힘썼고, 새 신자들을 돌보는 “바나바사역”도 시작했습니다. 이 밖에 주요사역은 수요찬양예배가 저녁 7시 30분에 있었고, 철야기도회가 매달 둘째 금요일 밤 11시에 있었습니다. 새벽기도회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확산방지 차원에서 성전에서 새벽기도를 하기보다 단체카톡방을 통해 말씀을 전하며 각 처소에서 새벽기도 진행 중).

 

언약교회는 지역사회 선교활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원래 백인회중이 오래 전부터 해오던 무숙자 식사대접 프로그램을 지원 중입니다. 북한 식량난 해소를 위해 한인연합감리교회가 추진하던 “오병이어(五餠二魚)” 운동에도 1998년부터 참여합니다. 중국의 조선족을 위한 구원의 손길도 펼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 언약교회는 가정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속회를 가정교회로 개편하고, 이때 교회 “사명선언(Mission Statement)”은 이와 같습니다: “언약교회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여, 함께 사랑의 가족이 되게 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시켜, 땅 끝까지 구원의 언약을 전파하게 하는 교회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 선교사명문 뼈대인 셈입니다.)

 

2001년 이은철 목사께서 호놀룰루에 있는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 파송되고, 김동현 목사께서 2001년 7월 1일부로 언약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부터 평균 400여 명이 주일예배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어부 출석은 평균 250여 명이었습니다. 급격한 교세증가는 교회시설 확충의 필요성을 낳았고, 결국 길 건너에 있는 Girl Scout 건물을 구입해 (9월 9일에 등기 완료) 교육관으로 사용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이 충실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이 교회에 많이 출석했고, 새 교인들이 날로 증가했습니다.

 

언약교회의 한 큰 특징은 다른 한인교회들과 달리 의료사역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주축으로 한 선교팀은 2003년 8월 31일부터 9월 13일까지 약 2주간 중국 연변에 있는 “사랑의 집”을 중심으로 의료선교를 할 수 있었고, 기타 여러 의료선교팀을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후반기에 언약교회는 유감스럽게도 또 다시 큰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직접적 갈등 원인은 어느 한 사역자(서의석 전도사)의 비위에서 비롯되었으나,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교인들의 의견이 나뉘고,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결국 50여 명의 교인들이 언약교회를 탈퇴하여 란초 쿠카몽가(Rancho Cucamonga)에 교회를 개척했고, 때를 같이 하여 약 20여 명의 교인들도 불신과 분쟁에 휘말린 교회에 실망해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2005년 4월 17일자로 세계선교부의 간사로 사역 중이던 김종성 목사께서 언약교회로 파송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몸이 극히 쇠약해 파송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5년 7월 1일부로 류재덕 목사께서 언약교회에 파송 받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교인들은 믿음의 공동체가 무엇인지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 긍정적 효과도 있었으나, 교인들이 받은 상처와 시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2005년에서 2008년은 재도약의 시기입니다. 류 목사는 교회기반을 가정교회에 두려 힘썼습니다. 주일예배를 “연합목장예배”로 규정했고, 네 단계의 “삶” 공부도 강화했습니다. 영어사역도 다시 활성화했습니다. 이때 새로운 교회 표어는 “하나님의 꿈, 세상을 품어 섬기는 사람들”이었고, 이 표어에 맞게 언약교회는 세계를 향한 선교에 많은 관심을 두고 선교에 힘썼습니다. 청년사역 이름을 희년의 사역(Jubilee Ministry, 온 땅을 회복하는 희년의 사역)이라 정하고, Claremont, Pomona, 멀리는 West Covina와 El Monte 지역에 있는 대학생들까지 포용하려 사역을 확장했습니다.

 

2011년에서 2020년까지 지난 10년은 언약교회에 역경의 기간이었습니다. 끊임없는 교회 내 크고 작은 문제로 인해 갈등과 분열로 몸살 앓았고, 이 기간 목회자 파송이 수차례 있었던 것은 교회 내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잘 반영합니다.

 

2011년 7월 유양진 목사 9대 담임목사로 부임

2012년 10월 정소영 목사 임시 담임 사역

2013년 7월 오경환 목사 10대 담임목사로 부임

2017년 7월 구진모 목사 11대 담임목사로 부임

2020년 7월 이상호 목사 12대 담임목사로 부임

 

그리하여 2020년 7월 12일 동부지방 감리사 멜리사 멕키논 목사(Melissa MacKinnon) 주재로 열린 줌화상 특별구역회(Zoom Video Special Charge Conference)를 통해 교회는 기나긴 갈등을 끝내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자 포모나와 온타리오 두 캠퍼스로 나뉘기로 공식 합의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젠 더 이상 교회 안의 문제로 갈등하기보단 상처를 치유하고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43년의 교회역사를 돌아보며 역사를 통해 교훈을 찾고, 앞으로 언약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잠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첫째, 앞으로 언약교회는 인간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발전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은 본 교회 창립예배 때 전해진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금번 본 교회가 포모나와 온타리오 캠퍼스로 나뉠 때 목장위주로 나뉘었음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목장단위로 캠퍼스가 분리되었습니다. 이것이 반증하는 것은 최근 언약교회의 갈등은 목장(속회)끼리 개념에서 심화되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교회로써 속회사역이 중요하나 인간적 유대강화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각자의 속회(목장)에만 머물지 말고, 모두에게 교제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둘째, 사랑, 희생 그리고 섬김이 이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만은 적극 삼가고, 힘들어도 서로 믿어주고 격려하면서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지체들이 힘들어 할 때 위하여 기도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합니다.

 

셋째, 문턱이 높은 교회란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무관심과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얼굴을 반갑게 맞아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새 가족부의 활성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넷째, 말씀묵상과 기도모임 또한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통해 모두가 함께 영성을 키우고 세상 사람들을 제자 삼는 전도와 선교사역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섯째, 젊은 이들을 신앙적으로 이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교육 필요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사실 자녀교육에 교회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인근 대학으로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과 타주에서 온 학생들을 위한 전도와 선교활동 강화해야 합니다. 이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우리 교회 DNA입니다. 클레어몬트와 포모나에 위치한 교회이기에 젊은 한인학생들을 상대적을 쉽게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체계적 계획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은 숫자가 많지 않아 힘들겠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실로 중요한 사역입니다.

 

여섯째, 한인교회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인종에게도 교회를 열어야 합니다. 다인종교회를 추구하는 영어사역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참고로, 1993년 언약교회의 단 제섭(Don Jessup) 목사께선 언약교회 미국회중이 마음을 열고 한어회중을 다시 맞이하도록 격려할 때 에베소서를 가지고 성경공부하며 “인종화합이 하나님의 뜻”임을 역설하셨다고 합니다(언약교회 30년 약사: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길).

 

일곱째, 교회건물과 부지를 더욱 더 잘 보살펴야 합니다. 언약교회 40주년 기념지로 출간한 소망과 함께한 광야생활 40년(1978-2018)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김치 냄새 때문에 다른 교회에서 몇 번이나 쫓겨났는데, 이곳 교회건물을 장만했을 때 참으로 기뻤다.” 우리는 이 기쁨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열심히 잘 관리하여 우리 세대에 맡겨진 사역을 위해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후세에도 오랫동안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덟째, 이젠 우리 눈을 안에서 밖으로 돌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비전, 선교사명에 이끌린 교회가 되어야 갈등과 분열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갈등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내 갈등보다 우리 모두가 약속한 비전과 사명을 놓치지 않는다면, 견해차이를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즉 비본질적인 것이 아닌 본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참고로, 본 교회의 선교사명문 변천사를 잠시 소개합니다.

 

오늘날 본 교회 선교사명문: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예수님의 참 제자로 훈련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실천하는 교회

 

선교사명문이 처음 주보에 실린 것은 김동현 목사께서 시무하신 2002년 1월 6일부터입니다. 그해 첫째 주일 주보에 이와 같은 선교사명문이 실렸습니다. (제가 추측하기엔, 이 선교사명문은 이은철 목사께서 가정교회를 본 교회에 접목시킬 때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당시 가정교회 개념을 도입한 모든 교회가 선교사명문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저희교회는 주님께 사람들을 인도하여(초청), 함께 사랑의 가족이 되게 하고(교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고(양육),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선교) 교회입니다.

 

류재덕 목사께서 시무하던 2005년 7월 17일 7월 셋째 주일부터 다음과 같이 선교사명문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님께 사람들을 인도하여(초청), 함께 사랑의 가족이 되게 하고(교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고(양육),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선교) 교회입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곧 2006년 1월 1일 주보에 선교사명문이 이렇게 다듬어졌습니다.

 

우리교회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초청),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교제), 예수님의 참 제자로 훈련 받아(양육과 훈련),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와 선교) 교회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을 품어 우리가 먼저 변화되면 세상이 변화될 것을 믿고 실천합니다)

 

류양진 목사께서 임시 담임자로 섬기던 2011년 7월 10일 주보엔 선교사명문이 이렇게 실렸습니다.

 

우리 언약교회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초청),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교제), 예수님의 참 제자로 훈련 받아(양육과 훈련),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와 선교) 교회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을 품어 우리가 먼저 변화되면 세상이 변화될 것을 믿고 실천합니다)

 

그러다가 오경환 목사께서 시무하실 때, 2016년 3월 6일부터 주보를 칼러로 인쇄하기 시작하면서 사명선언문도 이렇게 실렸습니다.

 

언약교회 5대 사명선언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교회

말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먹는 교회

교육: 신앙의 유산을 자손에게 전하여 믿음의 줄기를 이어가는 교회

전도와 선교: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인 온 땅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아는 교회

친교: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서도 함께 살아갈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2017년 7월 1일자로 부임하신 구진모 목사께서는 그 다음 해, 즉 2018년 1월 7일 현재 주보양식으로 변경하면서 선교사명문을 더 이상 싣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선교선언문 대신 매해마다 표어를 중심으로 목회를 추구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올해 교회 표어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는 기쁨을 드리는 교회, 사람에게는 행복을 주는 교회.”

 

개인적으로 나는 교회의 선교사명문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사실은 목회자로서 나 자신은 교회가 갖고 있는 선교사명문에 토대를 둔 교회를 추구합니다. 내가 꿈꾸는 이상이 아닌 언약교회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목회초점을 선교사명문 성취에 둡니다. 그래서 주보 표지 아니면 안쪽에 다시 선교사명문을 명시하려 합니다. 곧 성도들과 함께 내 자신이 기도하며 추구하는 언약교회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초청),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교제),

예수님의 참 제자로 훈련받아 (양육과 훈련),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와 선교)

사명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언약교회”란 이름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언약”이란 글자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약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전도와 선교사명 완수에 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언약교회. . . 언약의 백성이 서로 맺은 약속성취를 위해 헌신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교회입니다.

 

마 28:18-20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