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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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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멤버십 캠페인 (4): 주님의 몸 된 교회로의 초대2020-09-09 22:46
작성자 Level 10

멤버십 캠페인 (4): 주님의 몸 된 교회로의 초대

고전 12:12-27 (2020년 8월 26일 수요예배)

(영상으로 시청하기)

 

아마도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종종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다 같은 교회가 아닙니까? 모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섬기는 한 교회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굳이 특정교회에 소속하지 않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이곳 저곳에서 예배해도 되지 않습니까?” 이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온 세상 교회를 하나로 일컬어 “카톨릭교회” 또는 “범우주적 교회”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카톨릭"이란 말은 라틴어 카톨리커스, 헬라어 카톨리코스에서 유래했고, "(범)우주적"이란 의미입니다.

 

범우주적 교회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주님, 곧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섬기면서 그의 꿈인 하늘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려 함께 헌신합니다. 그래서 한 세례를 주장하는 복음주의교회는 어느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던 그것을 인정합니다. 세례예식 때 그가 자신이 온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났음을 믿음으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 교회가 하나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믿는 자들이 매주일마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 다니며 예배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한 교회라면서, 편리에 따라 예배 처소를 정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되느냐고요?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한 분 아버지를 모신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OOO 형제, OOO 자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라 해서 배가 고프다고 다른 형제자매의 집에 아무 때나 들어가서 먹거나, 몸이 피곤하다고 해서 그들의 집에 들어가 눕진 않습니다.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책임과 의무가 부족합니다. 마치 끼니 때마다 이 식당 저 식당 돌아다니며 음식을 사 먹는 손님과 흡사합니다. 편한 곳, 가능하다면 음식 맛까지 좋은 곳을 찾아가 먹은 음식값을 지불하고 나옵니다. 손님은 그것으로 해야 할 일은 끝난 것입니다.

 

음식점 주인은 그 손님이 내일도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긴 하겠지만, 그가 내일도 반드시 오라고 강요할 수 없고, 그렇게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고객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손님은 음식점에 다시 와야 한다는 어떠한 책임과 의무감도 없습니다. 그 특정 음식점에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정이나 교회는 다릅니다. 맛 있는 음식이 늘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그 집에 무작정 쳐들어갈 수 없듯이, 교회 역시도 맛깔 나는 음식(은혜로운 설교, 훌륭한 자녀교육, 좋은 건물시설, 기타 등등)이 잘 차려져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머리 되신 주께서 원하는 부름 받은 자로서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영적으로 허기질 때 들어가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집이 있습니다.

 

물론 속회모임과 같은 특별한 이유와 목적에서 다른 형제나 자매 집에 방문해 그곳에서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자기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그곳이 자신이 속한 집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이 책임과 의무를 다할 삶의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 가다”는 말을 “예배하러/드리러 가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러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받기 위해 찾지 않습니다. 신나는 음악이나 자아를 치켜 세워주는 좋은 말을 들으러 교회 가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과 만족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교회를 찾습니다. 봉사하고 섬기려 교회를 찾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예배하다” 혹은 “예배드리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교회 안에서 한 시간 앉아 시간을 채우는 것일까요? 가난한 자에게 얼마의 돈을 적선하듯이 헌금함에 얼마의 돈을 넣는 자선행위일까요? 예배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있지만, 내 나름대로 정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배는 예배자 자신의 모든 것을 예배의 대상, 곧 하나님께 바치는 종교의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이란 예배자의 삶, 즉 시간, 정성, 의지, 뜻과 물질 모두를 포함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삶을 올려드리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뜻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헌신을 재다짐합니다. 예배드리면서 다른 예배자들을 돕고 섬깁니다. 예로 들어서, 찬양대, 성가대, 자녀교육, 부엌봉사, 주차장 사역, 차량 사역, 기타 등등.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교의식은 주일예배 한 시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믿는 자들에 맡기신 명령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서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도록 인도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서로 힘을 합하여 주께서 맡기신 “땅끝까지 이르러 내 복음의 증인 되라”는 선교명령에 최선을 다해 헌신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 외딴 사막으로 불러내지 않으셨음을. 믿는 자들을 교회라는 신앙의 공동체로 불러내셨습니다. 교회라는 영적 처소에서 다른 믿는 형제자매와 함께 영적으로 성숙해 가면서 그와 동시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할 것 같으면, 미국교회에서 교회 전체 멤버십 중 오직 30-40%만이 평균적으로 교회에 출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교회에 멤버십을 갖지 않는 믿는 방문자들까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방문자들을 제하면 미국교회 성도들 중 과연 몇 %나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것일까요? 전체 멤버십 중 1/3도 제대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은 “세상에서 불러냄 받은 믿는 자들의 모임”인데, 도대체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일까요?

 

어떤 성도께서 금번 희망 캠퍼스 설문지를 교회로 보내며 이런 글을 함께 보내오셨습니다.

 

힘든 세상에 교회까지. . . 저는 교회는 하나님과의 통로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미국 땅에 발 디디고, 이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에게 가고 있는 걸음마 신자입니다. 이런 저에게 이런 어려운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좋은 분들이고, 소중한 친구들이고, 나에게 귀한 분들입니다.

 

그분의 갈등을 깊게 헤아리고서 답신을 보내면서 그 안에 이런 글을 넣었습니다.

 

고국을 떠나 이민의 삶 속에서 그나마 교회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어야 하건만, 오히려 교회가 두 분을 힘들게 해드렸다는 점에서 목회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강하게 느낍니다. 참으로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중략)

 

물론 성도들께서 "교적의 의미"를 모르진 않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말씀드리는 측면도 있습니다. 실은 교회에 적을 둔다는 것은 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세워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입니다. 때론 의견이 달라 감정이 상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인내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힘쓰겠다는 다짐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회라는 영적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소속감, 또한 소속된 곳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 이행 없이는 사실상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2, 13)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 24b-27)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교회로 불러서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신앙 안에서 성숙하게 하셨고, 교회와 더불어 지상명령을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껏 넉 주간 말씀을 통하여, 또한 오늘 저녁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연합감리교회에 관하여 알았고, 연합감리교회 조직에 관하여, 그리고 언약교회에 관하여 좀더 분명한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늘 저녁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 받았음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깨달음 단계에 속합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한다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옳게 이해하고 확신한 것에 온전히 헌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입어 구원받았고, 영생으로 초대되었음을 알고 확신한다면, 이제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우리 삶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허락하셨음을 알고 확신한다면, 이제 우리 역시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또한 그가 우리에게 맡겨 주신 명령에 절대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후 우리를 교회로 불러 함께 성장하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음을 알고 확신한다면, 이제 우리는 삶을 그분의 몸 된 교회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주의 몸인 교회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체인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서로 기꺼이 시간을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나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너희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믿는다면, 이젠 너희가 나를 따르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여라. 나를 따르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또한 자기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나만 바라보고 나를 따라와야 한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도전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1925년 1월 동아일보에 연재한 “동포에게 고하는 글”입니다.

 

그 민족사회에 대해 스스로 책임심 있는 자는 주인이요, 책임심 없는 자는 여객(旅客)입니다. 한때 우리 민족사회를 위해 뜨거운 눈물 뿌리는 때도 있고 분한 말 토하는 때도 있고 (…) 민족을 위해 몸을 위태한 곳에 던진 때도 있다 할지라도, 이렇다고 주인인 줄로 자처하면 오해입니다. 지나가는 여객도 남의 집에 참변이 있는 것을 볼 때 눈물을 흘리거나 분언을 토하거나 위급한 것을 구제하기 위해 투신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 그 집에 대한 영원한 책임심은 없습니다. 내가 알고자 하고 또 요구하는 주인은 우리 민족사회에 대하여 영원한 책임심을 진정으로 가진 주인입니다.

 

보험 세일즈맨이 팔고자 하는 상품을 먼저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합니다. 고객이 그 보험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최선을 다해 설명한 이후 마지막으로 고객에게 묻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이 보험을 구입하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금번 멤버십 캠페인 동안 나는 연합감리교회와 언약교회란 상품을 여러분에게 최선을 다해 소개했습니다. 아마도 금번 캠페인을 통해 여러분은 그 어느 때보다 연합감리교회에 관하여, 언약교회에 관하여 깊이 있는 이해를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나요?

 

자, 만약 그러하다면, 이제 여러분의 선택은? 여러분은 주님을 좇기로 결단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이상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소속하여 함께 헌신하기로 결단하셨습니까? 또한 여러분은 언약교회에서 믿음 안에서 성숙하고 다른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주께서 맡기신 지상명령을 수행하겠다 결단하셨습니까?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이 자리엔 이미 오래 전 언약교회 멤버십 서약을 하신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그런 멤버십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오래 동안 함께 이곳에서 신앙생활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이 교회에 갓 들어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만약 이미 멤버십 과정을 거쳤다면, 전에 가졌던 멤버십 서약을 다시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이 시간을 함께 했으면 하고, 만약 멤버십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멤버십 서약을 하는 의미에서 이 시간에 동참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그 질문을 듣고 동의한다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면서 멤버십 서약을 결단하는 마음가짐을 갖기 바랍니다.)

 

질문 1: 그리스도의 범우주적교회 일원으로서 여러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헌신하고, 교회사역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까?

 

대답 1: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질문 2: 여러분은 언약교회 일원으로서 기도와 예배 출석 또한 재능기부와 섬김을 통해 교회 여러 사역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열심으로 동참하겠습니까?

 

대답 2: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비로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한 여러분의 고백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질문 3: 여러분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인 언약교회와 교회사역에 충성할 것이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각종 예배와 모임에 충성스럽게 참석하며, 맡겨진 재능과 은사를 십분 활용하여 교회를 열심히 섬기겠습니까?

 

대답 3: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언약교회 성도로서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 또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완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단과 함께 “웨슬리언 언약기도”를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웨슬리언 언약기도

 

나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고,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나를 움직이며, 당신의 사람과 나로 하여금 함께 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을 행하게 하시며, 고난의 자리에도 처하게 하소서. 당신에게 필요한 대로 사용되게 하시며, 때로는 버려지게도 하소서. 당신의 영화를 때로는 있게 하시며, 때로는 낮아져 겸손해지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넘치게 하시며, 때로는 비워지게 하소서. 모든 것을 갖게 하시며, 아무것도 갖지 못하게도 하소서. 모든 것을 당신의 기쁨과 의지 앞에 전격적으로 의탁합니다. 이제, 나의 영화로운 축복의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시여, 당신은 나의 것이고,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땅에서 맺은 언약이 하늘에서 인준되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