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mage Alt

묵상나눔

묵상나눔
제목지칠줄 모르는 개혁 의지와 열정2021-04-23 12:57
작성자 Level 8

지칠줄 모르는 개혁 의지와 열정

  (느 13:23-31)


느 12:27-47에 성벽 봉헌예식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실려 있다. 성벽 봉헌식에 참석한 모든 백성에게 참으로 뜨겁게 달아 오른 감격과 헌신의 각오가 있었을 게 분명하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느 12:43).


봉헌식 후 느헤미야는 쉬지 않고 곧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백성에게 물오른 감격과 헌신의 각오가 식기 전에 계속적으로 정화운동에 착수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느 13장)은 이런 구절과 함께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1절). “그 날”은 “성전 봉헌식이 있었던 바로 그 날”을 의미함이 분명하다. 


여기서 물론 “모세의 책”이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백성에게 전한 율법, 즉 모세오경을 의미한다.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1절). 


특별히 “그 책에 기록하기를”이란 구절을 눈 여겨 살필 필요가 있다. 느 13장에 전개된 정화운동은 “그 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기 위함이었다고 정화운동의 동기를 밝힌 것이다. 그렇다. 느헤미야가 백성과 더불어 전개했던 정화운동, 곧 개혁운동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위함이었다. 곧 성경의 가르침대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 언약교회에서 바로 이런 정화운동, 곧 영적 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자신이 생각한 옳고 그름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우리의 사고나 이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바로 그것이 정화운동, 곧 영적 갱신이다. 


교회는 시시때때로 성경으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살펴야 하고, 곧바로 성경으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을 결코 쉽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상당히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잔잔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타고 누워 있는 사람이 자신의 배가 해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나 어느 순간에 눈을 떠보니 해변으로부터 상당한 거리까지 떠밀려 같음을 깨닫게 되는 것과 일반이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느 13:23-31)에서 느헤미야는 유대 백성에게 이방인과의 혼인을 단절할 것을 종용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25절). 


참고로, 이방인과 혼인 풍조가 문제가 된 것은 느헤미야가 잠시 바사 왕국에 다녀오게 되었는데(6절), 바로 그 사이에 유대사회에 영적 기강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이방인과 혼인하는 유대인 무리가 사뭇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고국으로 다시 돌아온 느헤미야가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서 크게 분노한다.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 .”(25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27절). 그는 이방인과의 혼인은 죄악이란 것과 자신이 그런 죄악을 꾸짖을 의무가 있음을 밝혔다. 결코 그가 묵인할 수는 없었던 죄악으로 여긴 것이었다(27절). 


위의 구절들은 느헤미야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우리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어긋난 모습을 보고서 크게 분노한 느헤미야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어긋난 행동을 보고서 격분하는가? 아니면 눈감아 버리거나,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내 자신에게도, 우리 자신에게도 느헤미야가 가졌던 “의로운 분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의 마음이 아닐까? 


느헤미야가 유대 백성에게 이방인과 통혼을 금하는 이유로써 성경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또한 솔로몬의 나쁜 선례를 들고 있다.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26절). 솔로몬이 이방에서 데려온 후궁들의 꾀임에 빠져 이방 신들을 섬겼던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다(왕상 11:4-8).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실로 엄청난 지혜를 받았고(왕상 4:29),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강하고 부유한 나라를 세울 수 있었으며(왕상 4:20,21, 9:26-28), 뭇나라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다(왕상 10:1-9). 그뿐 아니라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부정하게 취한 여인 밧세바의 소생이었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다윗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를 수 있었다(삼하 12:24,25). 이렇게 보건대,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였다. 그런데 그만 그가 혼인한 이방 여인들이 가져온 이방 신들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것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해서 유대인들과 이방인과의 통혼이 그토록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느냐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개혁을 아무리 힘들게 성사시켰다 했다 해도 조금만 간과하면 너무 쉽게 또한 빠르게 옛 타성으로 젖어들어간다는 것이다. 더러운 영은 쫓겨나갔다가도, 감시를 조금만 소홀히 하면, 또다시 돌아오려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혼인문제를 바로 잡은 후 느혜미야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제대로 세워 성전업무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조치를 취했다.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30, 31절). 그가 바사 왕국을 다녀온 동안 잠시 와해된 반차 조직을 재정비한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위한 느헤미야의 끊임없는 열정과 수고가 참으로 인상 깊다. 도대체 느헤미야가 언제쯤이나 그런 선한 열정과 수고를 멈추었을까? 글쎄 내가 본 느헤미야의 열정과 수고는 결코 멈추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바로 그런 열정의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땀흘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열정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또한 우리 언약의 백성 모두에게도 그런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있었으면 싶다. 결코 지치지 않고, 시들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길 원한다. 그래서 느헤미야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길 바란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31절). 


함께 나누는 기도제목: 


- 오 주여, 느헤미야처럼 언약의 백성 모두가 결코 지치지 않고, 시들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주의 성령께서 인도하소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쉬지 않고 끊임없이 땀흘리게 하소서. 


- 코비드-19 전염병 정국이 하루 속히 진정되어 인류가 바이러스 위험에서 벗어나고, 온 교회의 예배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 금번 재난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소서. 


-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이 주의 치유하심으로 온전히 회복되게 하소서. 


- 언약교회가 주의 은혜 가운데 지속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된 교회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