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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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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루살렘 거주한 용기 있는 사람들 2021-04-22 12:39
작성자 Level 8

예루살렘 거주한 용기 있는 사람들 

(느헤미야 11:1-11)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1, 2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성전이 그곳에 있고, 먼 옛적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두시고자 특별히 택하신 장소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벽재건을 끝낸 느헤미야는 이제 그 거룩한 성읍에 거주할 백성의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은 매우 컸으나 거주민은 매우 희소했다. 또한 오랫동안 황폐된 채 방치된 곳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 가운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한 때는 다윗 왕조가 일으켜 세운 도읍지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도 포로기에서 돌아온 자들에 의해 이미 다시 세워졌으며, 총독 느헤미야의 지도 하에 성벽도 세워졌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서로 앞다퉈 그곳에 거주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길 기피했다. “왜 그랬을까?”란 질문이 당연히 제시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루살렘은 포로기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을 향한 이방인들의 견제가 가장 심한 곳이었이다. 예루살렘과 그 인근지역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이방인들이 자신들이 힘써 일군 삶의 터전과 영향력을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온갖 텃세를 부렸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한 유대인들은 언제 다가올 지 모르는 이방인들로 비방과 박해를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둘째로, 예루살렘에 유대인 거주민들이 적은 이유는 각자 자기 조상들의 삶의 터전에서 뿌리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포로기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재건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심을 낼 수 있었던 공통분모였다. 하지만 각자 삶의 터전을 일구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문제가 많은 예루살렘보다 시골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한 삶을 추구할 수 있기도 했다. 그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예루살렘이 다시 부흥하지 않으면, 예루살렘 성전은 늘 음흉한 이방인들의 박해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영적 구심점이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건대, 각자 삶의 안일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안일보다 더욱 앞섰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 가운데 적은 다음과 같은 한탄이 들려온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빌 3:21). 하나님의 영광과 공공의 유익보다 각자 개인의 안일과 영화를 추구한 이들을 향한 진한 슬픔이 배어 있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교회가 재능과 일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건만, 더 이상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뒷짐을 지고 바라보는 이들이 사뭇 많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할 것 같으면, 자기 일보다 예수님의 일을 먼저 구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주님의 교회를 위해 자기 십자가 지고 가야 한다. 그것이 참된 제자의 삶이다. 편해지려 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주님의 교회를 위해 우리 모두 더욱 힘써 땀을 흘려야 한다. 


셋째로,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거주하길 꺼려했던 것은 아무래도 더욱 엄격한 통제 아래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방인들로부터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서 총독 느헤미야는 성벽 파수꾼을 두었고, 관리자들을 두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느 7장).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느 7:3). 


한편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자들을 채우기 위한 선한 노력이 시도된다. 무엇보다 먼저, 백성의 두목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1절). 그들은 역시 지도자다운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성전과 성읍 또한 공공의 유익을 위해 개인의 안일을 뒤로 했고,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었다. 물론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기에 다른 사람들도 그 성읍에 거주할 용기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지도자는 말이 아니라 삶의 본으로 백성을 이끌어야 한다. 


둘째로, 예루살렘 성읍 안에 빈 곳이 너무 많았기에 백성의 십분의 일이 예루살렘에 거하도록 제비뽑기를 하였다.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1절). 제비뽑기는 모든 결정을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어맡긴다는 믿음의 표시였다. 


셋째로, 공공의 유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예루살렘 거주를 희망한 용기 있는 자들도 더럿 있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2절). 그들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업을 위해 모험을 기꺼이 껴안았던 이들이었고, 백성은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감사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거주한 지도자들의 이름을 상세히 기록한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 .”(3절). 느 11장에 기록된 이름들은 참으로 귀한 이름이다. 참으로 용기 있는 자들의 이름이다. 자신과 가족의 안일을 뒤로 하고 거룩한 성읍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을 자처한 자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본이 되는 이름이고, 그들의 이름은 후대를 위해 기록해둠이 지극히 마땅하다. 


각 지파의 두목들 뿐만 아니라 사뭇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예루살렘에 거주했다(10절 이하). 사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거룩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나 그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래야 자신들에게 맡겨진 반차에 따라 성전업무를 충실히 감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성전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서 예루살렘에 삶의 터전을 일군 용기 있는 유대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우리 역시 편해지려 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또한 주님의 교회를 위해 더욱더 희생과 헌신을 감당하겠노라 다짐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함께 나누는 기도제목: 


- 오 주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성전을 위해 기꺼이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서 예루살렘에 삶의 터전을 일군 용기 있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우리 역시 편해지려 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또한 주님의 교회를 위해 더욱더 희생과 헌신을 감당하겠노라 굳게 다짐하게 하소서.


- 코비드-19 전염병 정국이 하루 속히 진정되어 인류가 바이러스 위험에서 벗어나고, 온 교회의 예배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 금번 재난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소서. 


-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이 주의 치유하심으로 온전히 회복되게 하소서. 


- 언약교회가 주의 은혜 가운데 지속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된 교회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