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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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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모두가 일어나 성벽을 재건에 힘쓰다2021-04-16 10:51
작성자 Level 8

모두가 일어나 성벽을 재건에 힘쓰다

 (느 3:1-12)


머나먼 바사 왕국에서 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느헤미야가 삼 일 후 밤중에 일어나 몇 사람만 데리고 나가 성 안팎을 조용히 살폈고, 특별히 옛 성벽 주추돌이 여전히 튼튼한 상태인지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며칠 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다 성벽재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성벽재건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거룩한 뜻이고, 그 사업에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정녕 함께할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듣고서 마음에 감동을 받은 무리가 화답했었다.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느 2:18). 그 후 곧바로 예루살렘 성벽재건 공사가 활발히 진행된다. 할렐루야! 


성벽재건 과정을 다루면서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에 힘써 동참한 고마운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한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그 명단들이 몇 천 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수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감동을 주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누가 알았으랴?


이렇게 보건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름들은 참으로 귀하고 복되다. 이름 하나하나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주의 교회를 위해 땀흘려 헌신한 공로로 인해 우리의 이름이 기록에 남게 된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 역사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일까?” 물론 대가를 기대하기에 땀흘려 수고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그런 수고가 너무 귀하고 고마워 굳이 기록에 남겨두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또한 교회역사가 지속되면서 후세가 역사책을 펼칠 때마다 그 이름을 읽고 그가 어떤 수고를 했는지 기억하고서 그들 역시 뒤를 이어 주님의 교회를 위해 땀흘려 수고하지 않겠는가? 또한 하나님께서도 그 이름을 영원토록 귀히 여겨주시지 않겠는가?  

 

한편으로, 성벽재건은 북쪽 양문(Sheep Gate)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양문에서 끝을 맺는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1절);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31, 32절).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할 질문은 “성벽재건을 양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양문에서 끝낸 이유가 무엇인가?”이다.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내 자신이 생각한 가장 큰 이유를 소개해 본다. “양문(Sheep Gate)”은 예루살렘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해 있는데, 성전에서 올려드리는 희생제사에 필요한 양과 염소를 바로 이 문을 통해 들여왔다. 양문을 통해 들어간 제사용 짐승은 이 문 바로 곁에 있는 못에서 씻어 성전으로 옮겨졌다. 참고로,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기적 이야기에 언급된 “양문”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요 5:2). 


이렇게 보건대,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한 것은 대제사장 가문 뿐만 아니라 유대 백성 모두에게도 영적으로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유대 백성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를 가장 소중히 여겼고, 제사회복을 가장 시급하게 생각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후세 사람들이 참으로 본받을만한 믿음이다. 물론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제사, 곧 예배가 가장 소중하고, 무엇인가를 회복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배회복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코비드-19 정국 가운데 예배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신중히 살펴보고서 예배회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더욱 열심을 내야하지 않을까?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이 걸어가는 삶의 여정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영적 의미가 성벽재건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공사를 양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양문에서 끝맺음했던 것이라 본다. 곧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회복, 곧 예배하는 믿음의 백성(공동체)로 회복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언약교회 역시 다른 무엇보다 예배하는 믿음의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벽재건에 땀흘려 동참한 이들의 명단을 읽으면서, 예루살렘 성벽재건은 특정 사람들만 동참했던 게 아니었음을 본다. 대제사장 가문, 여리고 사람들, 하나스나아 자손들, 학고스 가문, 므세사벨 가문, 드고아 사람들, 바세아 가문, 기브온 사람들, 금장색 할해야 가문, 후르 가문. . . 성벽재건에 동참한 이들의 지위는 참으로 천차만별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벽재건에 모두가 힘써 동참했다. 


우리 언약교회도 소수의 사람만 교회 재건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써 동참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 .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전 3:1, 3). 이젠 허물어진 것을 세울 때가 아니겠는가? 언약의 백성이여, 주님의 교회를 재건하는 선한 일에 팔을 걷어 부치고 뛰어들지 않겠는가?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이 선한 일에 더욱더 동참할 때, 교회회복은 더욱 빨라질 것이고,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더 이상 손을 놓은 채 방관할 수는 없지 않는가?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지 아니한가? 


사도 바울께서 주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권한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함께 나누는 기도제목: 


- 오 주여, 예배회복이 가장 소중하고, 가장 시급함을 절실히 깨닫고서 코비드-19 정국 터널 끝자락에서 이제 우리 모두가 예배회복을 위해 더욱 힘쓰게 하소서. 주님의 교회가 허물어진 부분들을 올바로 세우게 하소서. 교회를 재건하는 귀한 일에 우리 모두가 팔을 걷어 부치고 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교회역사가 지속되면서 후세가 역사책을 펼칠 때마다 헌신한 우리의 이름을 읽고 어떤 수고를 했는지 기억하고서 그들 역시 뒤를 이어 주님의 교회를 위해 땀흘려 수고하게 하소서.  


- 코비드-19 전염병 정국이 하루 속히 진정되어 인류가 바이러스 위험에서 벗어나고, 온 교회의 예배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 금번 재난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소서. -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이 주의 치유하심으로 온전히 회복되게 하소서. 


- 언약교회가 주의 은혜 가운데 지속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된 교회되게 하소서.